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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호 - 적당함 혹은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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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방선교회 작성일17-06-09 11:58 조회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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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함 혹은 부족함

 

최강 스테파노 신부/멕시코 지부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성주간과 부활주일을 막 지내고 난 월요일 오후입니다. 오늘은 제가 심심할 때 써가고 있는 우화(寓話) 중 한 편을 나누면서 선교 일기를 시작해 봅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슬기롭기로 명성이 자자한 스승 여우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어째서 저희가 굴속에 차곡차곡 재물들을 쌓아두기가 무섭게 자꾸만 밖에다 내다 버리시는지요?”

다른 동물들이 우리 동굴을 뭐라 부르던가?”

여우굴이라고 부릅니다만......”

다른 동물들이 이 동굴을 여우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거야 저희 제자 여우들이 스승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런 것이 아니 옵니까?”

옳거니! 여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니까 여우굴이다. 만약 이 굴이 온갖 잡다한 것들로 꽉 들어차서 정작 여우가 살아갈 공간조차 없게 된다면 그것은 더는 여우굴이 아닌 게야. 불필요한 것들을 자꾸 비워서 빈 곳이 많을수록 주인 노릇 하면서 살 수 있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부족한 저희의 마음을 스승님의 밝은 지혜로 채워주십시오.”

적당히 비우는 것이 주인이 되는 길이다. 나는 그대들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며칠 전 아침 일찍부터 사제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가 되지도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다급한 병자성사를 청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처음 보는 형제님이 남루한 복장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집 축복을 청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맙소사! 세상에 집 축복을 이렇게 이른 시간이 청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답니까? 10시쯤 다시 방문해 달라고 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형제님은 9시쯤 사무실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마누엘 씨 부부와 이미 면담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10시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10시가 되어 결국 형제님이 타고 온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집 축복을 하러 떠났습니다. 도착해보니 축복해야 할 곳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집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그냥 창고의 한구석에 지붕을 올려서 비를 막은 공간이었습니다. 세간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과달루페 성모님 초상화만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은 형제님과 그의 아내가 어느 집 창고의 한편을 막아서 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몇 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마련한 이라고 했습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정말 축하 해야 할 일이라서 온 정성을 다해 축복을 해주고 돌아왔습니다.

 

 ! 벽과 지붕을 이어서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여기 집에 대한 설명에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 하나가 공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집을 짓습니다. 물론 그 집 안에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야 불편함이 없이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가끔 집이라는 공간을 오로지 천연가죽 소파니, 양문형 냉장고니, 외국산 가구와 같은 호화스러운 물건들로 채우는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집에 대한 근본적인 필요는 곧 공간에 대한 필요와 다름이 없으니 온갖 부수적인 세간들로 공간을 다 채워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불편함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집의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면에서나 적당함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함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적당함이라는 한계를 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족함을 해소할 만큼만 원해야 하고, 넘칠 때는 얼른 주변과 나누거나 그 원함을 중단해야만 합니다. 하나를 가지면 되는데 둘, 셋을 원하면 틀림없이 탈이 납니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 스스로 필요한 재화 대부분을 생산해내던 시절에는 모든 것이 적당하게, 혹은 약간 부족하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와 컴퓨터가 24시간 동일한 제품을 찍어내는 요즘에는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이 풍요로움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나왔습니다. 과다한 음식 섭취와 영양 상태는 비만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IT 기술의 발달로 가상의 공상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인간관계는 고독을 우리로부터 멀리 치워버렸습니다. 넘치는 정보들은 신화와 전설이라는 커튼을 벗겨 버렸고,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은 돈을 앞세워 우리로부터 신앙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신화와 전설의 세계로 돌아가 소박한 상상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가끔은 넘쳐나는 물질문명의 세계를 과감히 탈출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밤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고 싶습니다. 문명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순수자연의 땅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하늘의 별을 세고 싶습니다. 의도적으로 나를 고독과 결핍의 상태에 인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적당함이라는 상태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물질도, 정보도, 친구도, 힘도··· 우리는 모든 것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하게 가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적당함이 어렵다면 차라리 부족함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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