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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름호 - 첫 본당을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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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방선교회 작성일18-06-25 11:03 조회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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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본당을 맡으며

권효준 탈시시오 신부 / 모잠비크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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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월 원래 공소였던 코부에 공동체가 본당으로 승격이 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본당 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공소였을 때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는데,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곳이 된 것이었다. 공소회장직을 맡았던 분도 자연스레 본당 사목회장님으로 승진(?)을 하셔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시곤 했었다. 불행히도 얼마 후에 월급을 준다던 다른 교회의 스카우트 제의에 인사 한마디 남기지 않고 가셨지만, 그 전까지는 나름 최선을 다하셨더랬다. 본당에서 성사혼을 하신 분 중에 유일하게 읽기가 가능한 분이었는데매일 미사를 봉헌할 때면, 성당 앞에 사시는 자매님 한 분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셨지만, 포르투갈어를 읽지 못하셔서 미사 주례를 하면서 독서도 읽고, 기도문을 올리면서 응답도 같이하곤 했다. 감기라도 걸리는 때면 쉽지 않았다. 혼자서 시작기도부터 마침기도까지 신자석에 들리게 큰소리로 경문을 외워 내려가는 것이 마치 큰 수행의 일부라도 된 듯했다.

본당 신부로 발령을 받고, 첫 사목회의를 위해 공소회장님들과 공소 대표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신부가 새로 와서 큰 변화라도 있을 것이라 예상하셨는지 많은 분이 오셔서, 많은 것을 바라셨다. 그중에 첫 번째가 세례이다. 지난 5년간 혹은 어떤 공소들은 7년간 한 번도 신부가 방문하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소가 깊은 산속에 있어서 본당에 오지 못하니, 두 번째로 원하는 것이 공소방문이었다. , 공소방문을 해서 아이들에게 세례를 달라는 거다. 코부에 공동체가 본당이 되기 전까지는 약 190km가 넘는 거리를 가야 신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90km로 줄어들었으니 더 많은 방문을 요구하셨다. 그래서 약속한 것이 매년 3회 방문이다. 공소회장님들은 흡족한 미소의 박수를 치셨다.

첫해 방문 때마다 여기저기서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 세례를 청했다. 한결같은 말이 오랫동안 신부님이 오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 공소가 세례 대상자들의 이름을 공책에 혹은 A4용지에 가득히 적어 제출하였다. A4용지에 손글씨로 빡빡하게 적은 리스트가 5장이나 되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유아세례를 주는데 부모들의 상태가 문제가 되었다. 사실 교구 지침에 따르면, 유아세례의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있어 부모들이 성사혼을 먼저 해야 한다. 미혼모의 경우에는 1년간 교리공부를 해야 하고, 같은 기간 동안 교회 활동에 얼마나 성실히 참여하는지를 확인한 후에 고해성사를 받고 나서야 그 자녀의 세례를 허락한다. 이 지침 때문에 교구 사제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부모들의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방인 신부님들의 의견에 따라 교구 지침으로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유아들의 세례는 부모들의 교육을 위한 볼모가 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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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에서 제출한 아이들의 세례 조건을 따져보면, 교구의 기준에 적합한 대상자는 많지 않았고, 성사혼을 하지 않은 가족이거나, 미혼모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비신자인 부모가 아이들만 데려와서 세례를 청하며, 친척들의 권유로 왔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나왔다. 성공회 신자들도 신부가 왔다는 얘기만 듣고 와서, 한다는 말이 가톨릭이어도 상관없으니, 아이에게 세례를이었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어도 되는 건가? 교구 내에서 일하고 있으니,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그런데 7년간 신부의 방문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끈질기게 요청하는 공소회장님들 목소리는, 내 마음의 창문에 끊임없이 던져지는 돌멩이가 되고, 다리를 무겁게 하는 천 근의 쇳덩이가 되었다. ‘에이, 이러면 안 되는데안 되는데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져서, 세 번째 공소부터는 가톨릭 가정의 아이들에게만은 세례를 주기로 결심했다. 첫해만 예외를 두기로 했다. 30여 개의 공소를 방문하고 난 후에는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315명이나 되었다. 그다음 해에, 교구 사제 모임에 보고를 올리며, 오랫동안 신부 방문이 없던 곳이라 첫해에는 사목적 배려로 세례를 주었다는 말에 한동안의 정적이 모임 공간을 채웠다. 모임이 끝나고 총대리 신부는 웃으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곤, 다시 한번 교구 지침을 상기시켜주었다. 근데, 그걸 몰라서 그랬겠나!

두 번째 해부터는 교구 지침이 공소에 전달되어 잘 지켜졌다. 그런데 그에 따라 공소방문 미사에 참석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 후에 알게 된 것은 이곳엔 세례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하나의 예식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마치 주술사에게 가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목걸이를 받아오는 것처럼, 손목에 나뭇가지로 만든 팔찌를 만들어 차는 것처럼, 세례도 아이들의 건강 유지를 위한 하나의 절차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부모나 보호자들의 교리교육이 우선되었던 것이다. 방인 신부들의 의견에는 그런 이유가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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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에서 지낸 햇수가 두 자리를 넘어가는 지금도 낯선 것들을 많이 접하며 산다. 결코,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이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보이면서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생각하고, 왜 항상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게 하냐며 학생들을 혼내면,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꾸중을 다 듣는다.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 눈치만 보고 한마디 대꾸도 없다. 그러면 대꾸도 없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는 그들에게 더 큰 무시를 느끼며, 목청을 한껏 더 높인다. 그렇게 2~3년을 혼내고 나면, 아이들이 어른에게 인사를 할 때는 조용히 다가가서 옆에 앉아 어른이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리다가 말을 건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 아이들에게 신부는 마을 어른들도 가르치는 큰 어른이었던 것이다. 이불킥의 순간이다. 아니 왜 이런 건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건지! 많이 참고, 더 참고, 아직 더 배워야 한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성당 기숙사 학생들에게 한국적 교육 센스를 갖고, ‘공부! 공부!’를 외친 덕분에 미사 중에 독서와 화답송을 혼자 읽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더 큰 욕심으로 불타는 순간을 나 스스로 보게 된다. 매일 포르투갈어 시험에, 산수 시험까지이것도 언젠가 이불킥할 일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주님께 바른길로 인도해 주십사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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