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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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설립자 최재선 (崔再善) 요한 주교

1912년 2월 24일 : 울산시 울주군 출생

1926년 9월 18일 :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입학

1938년 6월 11일 : 사제수품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

1957년 1월 26일 : 주교성성 (부산대목구 대목구장)

1973년 9월 19일 : 부산교구장 사임

1975년 2월 26일 :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1984년 5월 15일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설립

2008년 6월 3일 : 선종 (향년 96세)

 

최재선 요한 주교는 성소의 빈곤을 호소하는 세계교회의 요청에 부응하여 우리 교회가 그들과 형제적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성숙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외국의 형제들로부터 많은 물질적 · 영성적 도움을 받아 오늘의 규모를 가진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과거의 도움에 감사하고,

그 감사에 대한 보은으로 어려움속에 있는 해외의 형제자매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질적 성숙을 지향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정결, 청빈 그리고 순명의 복음삼덕을 몸소 철저히 실천했던 최재선 주교는 생애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심혈을 기울였던 해외선교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외방선교회 설립자 최재선 (崔再善) 요한 주교 일대기


1912년 2월 24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최봉조 세례자요한과 서해수 요안나의 8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한 최재선 주교는, 1926년 9월 18일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에 졸업했으며, 1938년 6월 11일에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라리보 주교의 주례로 사제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수류본당 9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계산동 주교좌 본당보좌 (1943.02~1944.02), 김천 마잠 (현 지좌동) 본당 3대 주임 (1944.02~1945.05), 김천 황금동 본당 주임 (1945.05~1955.05) 겸 성의중고등학교장을 거쳐 1955년 5월에 계산동 주교좌 본당 1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며, 7월에는 대건중고등학교 5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7년 1월 21일자로 부산 대목구가 대구 대목구로부터 분할 설정되자, 1월 26일자로 초대 부산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최재선 신부는 5울 30일에 부산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푸살라 명의 주교로 성성되었다. 1962년 3월 10일 한국 천구죠회에 교계 제도가 설정되면서 부산 대목구가 부산 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7월 17일에 교구장 착좌식을 가진 최재선 주교는 부산교구 승격에 맞추어 교구 행정과 사목활동, 신심과 전교 활동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 2차 바티칸공의회 (1962~1965) 의 '회개와 쇄신' 정신에 따라 교회일치 운동과 평신도 활동의 활성화에 토착화를 지향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65년 말에 이르러 부산교구의 신자수는 10만 명 정도에 달하게 되었고, 본당수도 50여 개에 달하게 되었다. 이처럼 교세가 확장되어 감에 따라 최재선 주교는 1965년 10월 초에 주한 교황 공사 주디체 대주교를 통하여 마산교구의 신설을 교황청에 요청하였고, 이듬해 2울 15일자로 마산교구가 부산교구로 부터 분리, 설정되었다.

1973년 9월 19일자로 부산교구장직을 사임함과 동시에 교황청 직속 성직자 포교연맹 한국지부 회장으로 임명된 최재선 주교는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과 잠재력을 직시하여 한국인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고자 1975년에 한국외방선교회를, 1984년에는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설립하였다. 한국외방선교회를 설립한 후 선종할 때까지인 2008년 6월 3일까지 해외선교에 중점을 두어 사목 활동을 했다. 2001년 10월 18일자에는 자비 1억원으로 중국 요녕성 교구의 본계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부산교구 교구장직을 사임한 최재선 주교는 성소의 빈곤을 호소하는 세계교회의 요청에 부응하여 우리 교회가 그들과 형제적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 로 성숙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외국의 형제들로 부터 많은 물직적 · 영성적 도움을 받아 오늘의 규모를 가진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과거의 도움에 감사하고, 그 감사에 대한 보은으로 어려움 속에 있는 해외의 형제자매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질적 성숙을 지향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최재선 주교는 한국외방선교회의 설립을 계획하고 준비하였으며 1975년 2월 26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동의를 얻어 본회를 설립하였다.

정결, 청빈 그리고 순명의 복음삼덕을 몸소 철저히 실천했던 최재선 주교는 생애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심혈을 기울였던 해외선교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재선 요한 주교는 2008년 6월 3일 오후 4시 46분 향년 96세의 삶을 부산 성모병원에서 마치시고, 경남 양산 석계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